균형을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와 젠더 교육
아이들은 점차 남녀를 구분 지어 ‘우린 서로 너무나 다른 존재야’라고 생각하며 자라게 된다. 사실 남학생과 여학생이 서로 그리 많이 다르지 않음을, 그리고 한편으로 각자가 훨씬 더 다양한 색깔을 지녔음을 깨달을 기회를 제공하는 두 개의 수업 사례를 만나 본다.
[1] 미디어 리터러시, 인권을 고려한 다양한 캐릭터 디자인하기
# 수업 취지
어릴 때부터 다양한 낯섦을 접하고 그것을 익숙하게 만들어 가는 경험을 하지 못하면 아이들은 자신과 다른 생김새나 취향, 생각의 사람을 배척하기 쉽다. ‘다양성’이 많은 분야에서 진취적인 성과를 이루는 데 중요한 요소임은 꾸준히 입증되고 있다. 오늘날 한국의 초등학생들은 대체로 어릴 적부터 다양성을 경험하기 쉽지 않은 환경에 놓여 있다. 우리
학생들이 주변에서 낯선 모습들을 자연스럽게 접하며 상상하고, 그를 통해 포용력을 기르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미디어를 통해 접할 수 있는 광고, 이모티콘, 지역 홍보 캐릭터 등을 비교·분석하도록 함으로써 성장을 도울 수 있다. 접할 일 없던 사람들의 입장과 다양한 관점의 필요성을 이해하는 일은 학생들의 공감 능력, 비판적 사고력,
더불어 살기 위한 민주시민 의식 고양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본 수업은 주제 통합으로 운영했지만 특별한 연구나 전시 학습 없이도 손쉽게 학급에서 시도해 볼 수 있도록 각 차시도 독립적으로 꾸렸다.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주저하더라도 지적하거나 이끌어 주기 보다 풍부하게 대화를 나눠 본다는 생각으로 접근해 보면 좋겠다. 감수성은 깨어나기도 하지만, 대화와 토론 속에서 길러지는 합리적 태도이기 때문이다.
평화롭고 인권 감수성 높은 교실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도덕과에서는 ‘우리가 만드는 도덕수업’ 차시를 활용하여 인권과 다양성이 깊은 연관이 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어떻게 학생 수준에서 실천해 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과정을 가진다. 이를 통해 도덕적으로 사고하고 실천함으로써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선한 영향력을 키워 갈 기회로 삼는다. 미술과에서는 제시된 이미지 속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어떤 식으로 바꾸면
좋을지 토의하고 새로운 캐릭터로 구현해 내는 과정을 통해 시각 이미지를 가지고 소통하는 역량,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제작하는 자기 주도적 미술 학습 역량을 기른다.
# 차시별 학습 계획
주로 다룰 캐릭터 다양성 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성차별적 상황을 인지하는 민감성, 인권이 보장되거나 침해되는 사례, 차이가 차별로 작용하는 기제를 인식하는 힘이 필요하다. 이에 중점 수업에 앞서 성 고정관념, 차이와 차별, 인권의 개념을 뭉툭하게나마 형성할 수 있는 활동을 구성했다.
# 활동 과정
1차시: ‘나다움’ 특징 찾기
‘보고 난 후 떠오르는 궁금증을 나눌 것’이라고 이야기한 뒤 시청한 광고 속엔 생김새와 행동만으로 성별을 판단하기 어려운 어린이 캐릭터가 등장한다. 자전거를 잘 타고, 빨간 안경을 쓰고, 어떤 손톱엔 매니큐어를 칠했으며, 나무를 잘 타고, 벌레를 맨손으로 잘 잡으며, 목소리가 다소 가늘다. 영상이 끝나기가 무섭게 학생들이 묻는다. “쟤
남자예요, 여자예요?”
사실 교사도 모른다. 그 캐릭터의 성별은. 학생들에게 모둠별로 특징을 찾아 추측해 보라고 했더니 제각기 이유를 들어가며 알아서 성별을 정해 발표한다.
광고 속 주인공의 성별은 잠시 후에 밝혀 주겠다고 하고, 우리 자신의 특징을 한번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학생들은 OX나 삼지선다 형식으로 자신의 특징이나 취향을 정리해 나갔다. 또 빈칸에는 자신만의 특징을 더 자유롭게 써 내려갔다. 빈칸을 모두 채운 학생들은 이제 친구들의 특징을 탐색할 시간을 가진다. 최대한 많은 친구를 만나면서 서로를
소개하고, 자신과 비슷한 ‘특징’을 가진 친구에게 사인을 받는다. 활동을 마친 학생들은 제자리로 돌아와 사인을 받은 친구들의 성별을 표시해 본다.
2차시: 차이, 차별, 평등 개념 인식하기
학생들은 흔히 ‘똑같이’ 대하는 것만이 평등한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평등은 그보다 복잡하지 않은가. 장애인에겐 시험 시간을 1.5배로 주기도 하고, 예산을 들여 다문화 가정에 교육 지원을 하기도 한다. 어떤 때엔 기회를 고르게 주는 평등 조치가 필요하고, 같은 기회 안에서도 출발선이 다른 경우에 그를 보조하는
정책이 필요할 때도 있다. 차이가 차별이 되는 기제와 차별처럼 보이는 평등의 개념에 대해 조금이나마 입체적으로 생각해 볼 기회를 주고자 했다.
학생들은 OX 퀴즈를 풀어 나가며 만나는 딜레마 상황들에 저마다 해석을 내놓으며 토론을 벌인다. 현시점에서 답이 다르게 갈라지더라도 좋다. 다양한 경우의 수만큼 여러 입장을 고려해 본다는 경험 자체가 중요했다. 교사가 내는 퀴즈 풀이가 끝나고는 학생들끼리 차이, 차별, 평등을 구분하기 위한 구체적 예시를 들고 모둠끼리 토의를 하고 분류해가며
개념을 분명히 해나갔다.
3~4차시: 유니버설 디자인하기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란 모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 즉 제품, 시설, 서비스 등을 이용하는 사람이 성별, 나이, 장애, 언어 등으로 인해 제약을 받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앞 수업에서 배운 ‘차이와 차별, 평등’에 대한 개념 학습을 반영한 결과물을 만들기에 미술의 유니버설 디자인 단원은
안성맞춤이었다.
아이들은 불편함을 개선할 수 있는 디자인을 의논하고 각자의 유니버설 디자인을 만들어 냈다.
5차시: 캐릭터 속 인권 및 다양성 인식하기
구글은 매년 세계 이모지 데이 World Emoji Day: 이모티콘을 기념하자는 취지의 축하 이벤트를 기념하는 새로운 이모티콘을 공개한다. 그때 특별히 고려하는 요소가 바로 ‘다양성’이다. 인종, 장애, 성별, 성 지향성, 나이를 다양하게 제시하여 누구나 이모티콘으로서 자신을 드러내고자 할 때 불편함이 없도록 하고 있다. 처음에는
이런 이모티콘이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주변에서 쓰는 걸 본 적이 없고, 나 역시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서 이모티콘들을 제시하고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을 모둠에서 토의해 보게 했다.
[활동] 우리 주변 캐릭터는?
활동에 앞서 아이들에게 미리 ‘최애 이모티콘’을 골라서 제출하도록 했다. 아이들은 주로 학교생활이나 일상을 보여 주는 것, 사람보다 동물, 정교한 그림보다 투박하고 간결한 선의 그림을 선호했다. 아이들이 선정한 이모티콘들을 두고 다양성이 얼마나 드러나 있는지 체크 리스트로 점수를 매겨 보았다.
학생들과 함께 ‘우리 주변의 이모티콘’을 분석해 본 결과, 캐릭터는 정말 다양했으나 그 다양성이 인종, 나이, 장애, 지역, 성별의 다양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에 우리는 이모티콘을 새롭게 바꾸어 보기로 했다.
6~7차시: 인권 감수성 반영한 다양한 캐릭터 제작하기
“인권 감수성을 잘 반영한 다양성 캐릭터로 변신시켜 주세요!”
모둠에서 한 개의 이모티콘을 플로터 출력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어 개선점을 찾았다. 모둠별로 한 가지 다양성 이슈에 집중하여 이모티콘을 새로 제작했다. 그리고 그 이모티콘을 활용하여 학교 곳곳에 제안하는 포스터를 만들어 게시했다.
8차시: 감상하고 성찰하기
포스터로 제작한 덕분에 우리 학급뿐 아니라 다른 6학년 학생들, 그리고 다른 학년 학생들까지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2] 젠더 교육, 맨박스 벗어나기: 나라서 좋아
# 수업 취지
사춘기 시기의 학생들이 성 고정관념에 갇혀 사회적으로 기대하는 성 역할에 스스로를 가두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심지어 성 역할에 충실하고자 행동을 과잉 표출하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해치는 일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우리 반에는 기회만 되면 ‘식스 팩’을 넘어 ‘텐팩’을 가진 몸짱 배우가 되고 싶다고 소리치는 ○○, 힘의 논리로
주변 사람들을 ‘찐따’와 친구로 나누는 ○○이, 체육 시간마다 운동 능력으로 서열화되어 주눅 드는 남학생들이 있다. 몸짱이 되고 싶다는 욕망, 또래 중에서 힘이 가장 센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 운동을 가장 잘하고 싶다는 욕망 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본인이 원하는 ‘남자’가 되지 않더라도 ○○는 그림을 잘 그리는‘사람’으로,
○○이는 춤을 잘 추는 ‘사람’으로 성별에 상관없이 긍정적인 자아상을 갖기를 바라며 수업을 구성했다.
# 차시별 학습 계획
주로 다룰 캐릭터 다양성 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성차별적 상황을 인지하는 민감성, 인권이 보장되거나 침해되는 사례, 차이가 차별로 작용하는 기제를 인식하는 힘이 필요하다. 이에 중점 수업에 앞서 성 고정관념, 차이와 차별, 인권의 개념을 뭉툭하게나마 형성할 수 있는 활동을 구성했다.
# 활동 과정
본 주제 통합 수업에서는 광고를 분석하고 직접 만들어 보는 단원에서 ‘여성성의 재정의’를 주제로 담고 있는 ‘나이키 광고: 너라는 위대함을 믿어’를 자료로 활용했다. 요즘 이런 취지의 광고를 퍽 자주 볼 수 있어 수업에 활용했는데, 남학생들이 소외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회의 성차별을 논할 때 여성이 받는 차별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아직 열세 살 남짓한 남학생들로서는 공감도 어렵고 이해하기 전에 반감부터 갖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남성성의 재정의’를 주제로 기획한 수업의 일부 차시만 발췌해 소개한다.
4차시
라면 광고로 수업을 시작했다. ‘○○○ 울리는~ ○라면!’ 앞 빈칸에 들어갈 말을 학생들은 다 알고 있었다. 사나이를 울린다는 게 어떤 특별함이 있기에 광고 문구로 쓰였는지 이야기 나눠 보고, 각종 매체에서 다루는 남자다움에 대해 추론하는 게임을 시작했다.
[활동1] 남자다운 게 뭐야?
•노래 ‘강남스타일’의 가사를 살펴 보고 남자다움의 의미를 추론해 본다.
학생들은 이 가사에 ‘남자들은 급하고, 화끈하고, 돈이 많아야 하고, 대충 해도 된다’와 같은 고정관념이 숨어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
•TV 예능
<런닝맨>에 숨어 있는 남자다움의 의미도 추론해 본다.
학생들은 남자들이 아파도 참아야 하고, 힘이 센 걸 좋은 점으로 강조해서 방송이 보여 준다고 지적했다.
•드라마 <열여덟의 순간>을 보는 언론의 시선을 추론해 본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런 고정관념을 계속, 자주 접하거나 잔소리처럼 들었을 때 어떤 영 향이 있을지 토의하고 발표했다.
[활동2] 나라서 좋아!
남자다움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그것이 고정관념들의 집합이라면, 그 남자다움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대신 자기만의 특징들을 발견하고 이름 붙이고 자랑스러워하기로 했다. 사춘기가 온 학생들의 자존감은 은근히 내려앉아 있어서, 여학생들이 나서기로 했다. 우리 반 친구들의 특징을 긍정적인 표현으로 적어 칠판에 붙여 나갔다.
남자다움이 부담스러운 누군가가 그것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여자다움이 부담스러운 누군가가 자유로워지도록 만드는 것과도 맞닿아 있다. 남자다움이 무게로 다가오는 남학생들에게도, 성 평등 감수성은 편안함을 줄 수 있다.
# 에필로그
평등 수업은 하면서 뿌듯하지만 하고 나서 종종 좌절을 경험한다. 우리 인식에 깊이 박힌 편견과 차별의 사고방식은 일상 속에 스며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고정관념을 깨는 수업을 성공적으로 한다 하더라도,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성 고정관념 등이 가득 담긴 대화를 의식 없이 주고받는다. 이때 교사의 역할은 쉽게 주저앉거나 조급함에 학생을 다그치지
않는 것일 터다. 아이들은 아주 서서히 바뀐다. 특히 오래된 고정관념을 깨고 나오도록 도울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인내심이다. 선생님들이 문득문득, 아이들이 나누는 대화의 결을 살펴보면서 성장을 짐작해 보면 좋겠다.
특히 성 평등은 많은 사람이 민감하게 여기는 주제다. 자칫하면 ‘치우쳤다, 편향적이다, 갈등을 조장한다’는 평을 듣기 십상이다. 주제 통합 수업을 준비할 때면 늘 균형에 대해 고민한다. 하지만 본 수업들을 살펴보면 알 수 있듯, 성 평등은 인권에 관한 논의다. 인권의 한 부분이면서 인권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래서 성 평등 수업을 하고 난 뒤
아이에게서 자라나는 것은 성 평등 감수성만은 아니다. 이게 곧 학교 폭력 예방 교육이자 인성 교육이고, 관계 교육이 될 수 있다.
더디지만, 학생들은 종종 기대를 뛰어넘는다. 그때의 성취감을 선생님들이 함께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