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
# 미디어 리터러시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미래는 항상 저 멀리에 있는 것 같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우리의 현실이 되어 있다. 적어도 디지털 미디어와 학습에 관한 한 2020년의 상황이 그러했다. 도대체 누가 온라인 교육을 교육과정 운영의 중심에 놓는 상상을 할 수 있었을까. 팬데믹 상황이 되자 드러난 것은 우리나라가 ‘IT 선진국’으로 가져왔던 자부심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교육과정도, 교육과정을 운영할 만한 환경도, 교사와 학생의 역량도, 학습을 위한 스마트 기기 보급 상황도 매우 좋지 않은 수준이며, 지역과 가정 환경 등에 따라 디지털 격차 또한 상당했다는 사실이다. 미디어 접근과 활용, 그리고 제작과 공유의 능력이 곧 교사의 교수 역량과 학생의 학업 성취도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많은 교육 구성원들은 당혹감을 느꼈다. 당연한 말이지만, 미디어 활용 능력이 교수-학습 역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2020년의 갑작스럽고 불가피한 비대면 상황에서 우리는 이것이 어느 정도 바짝 앞당겨진 ‘미래 교육’의 일면이라는 것에 대해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
온라인으로 모든 것을 매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린이-청소년의 미디어 생활에 대한 우려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미디어를 통해 전파된 허위 정보와 혐오 문화, 지속적인 미디어 노출로 인한 불안감 등은 바이러스 이상으로 정신 건강을 위협했다. 어린이들이 긴 시간 가정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유튜브와 틱톡 등 교사가 개입하기 어려운 미디어 콘텐츠에 몰입하는 시간도 그 어느 때보다 길어졌을 것이다. 개그맨이나 연예인이 아닌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전국구 형과 누나로, 어린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어 언어생활과 놀이 문화를 주도해 온 것은 이미 수 년째 계속되어 온 현상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2018년 초등 고학년생의 스마트폰 보유율은 6.4%, 저학년의 보유율은 7.1%였지만, 2020년에는 급격히 높아졌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디어를 둘러싼 다양한 사건 사고들, 즉 코로나19 관련 가짜 뉴스를 유포한 당사자가 고등학생이었다든가,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가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일 억이 넘는 금액을 결제했다든가, 또 ‘N번방’과 같은 디지털 범죄의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 청소년이 포함되어 있다든가 하는 보도들은 우리가 디지털 미디어 세계에서 살아가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문화에 대해 너무나도 무지하지 않은가라는 충격을 전해주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간 우리 사회가 디지털 미디어 교육에 결코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상당히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터넷과 게임 중독으로부터 어떻게 아이들을 ‘보호’할 것인가와 관련하여서는 이미 국가 수준 교육과정에 그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실리콘 밸리에서는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주지 않는다.”라는 말은 어린이에게서 스마트폰을 멀리하고 디지털 미디어 세계에서 차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믿는 교육자와 양육자들에게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이러한 보호주의중심의 미디어 교육에 대한 관점은 문자 문화 안에서 살아온 기성세대를 안심시킨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이미 미디어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적극적인 교육적 대책이 될 수 있을까?
역사를 돌이켜 보면 구 미디어 문화에 속한 부모-교사 세대가 새로운 미디어로부터 어린이와 청소년을 보호하고, 미디어 접근을 제한하고자 하는 교육적 입장은 매번 되풀이되어 왔다. 19세기 후반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만화가 처음 선을 보였을 때, 1930년대의 영화의 시대에, 그리고 1970년대의 TV, 1990년대의 인터넷 문화, 그리고 바로 최근의 게임 문화에 이르기까지 미디어에 대한 보호주의적 입장의 교육은 계속 반복되어 왔다. 이러한 미디어로부터의 보호와 제한이 어느 정도 청소년 보호와 관련된 교육적 성과를 이루어 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 시대 뉴 미디어는 그와 관계없이 확산되고 진화되었다. 해당 미디어로부터 시대의 주류 문화가 피어났고 학습과 커뮤니케이션이 집중되었으며, 경제적 토대가 형성되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각 시대의 미디어 엘리트 중 많은 이들이 주류 교육에서 살짝 자유로웠던 이들임을 상기해 본다면 미디어로부터의 보호는 필요하되, 최선도 전부도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더하여 실리콘 밸리의 그들은 자녀가 필요로 할 때 언제든지 디지털 역량을 기를 수 있는 최고 수준의 환경과 기회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보호주의는 전폭적인 교육적 관심과 양육자의 보호 속에 살아갈 수 있는 중산층 이상의 자녀에게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교육의 대상은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며, 그들의 삶과 문화 안에서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시민으로서의 역량을 키울 수 있어야 한다. 바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필요한 이유이다. 전 세계의 교육 선진국 및 국제 기구 등에서는 미디어 리터러시와 디지털, 정보 리터러시 등 관련 역량을 21세기 핵심 역량으로 설정하여 국가 교육 및 시민 교육의 토대로 삼고 있다.
# 미디어 리터러시란 무엇인가
미디어 리터러시란 정확히 무엇일까? 미디어 리터러시란 말 그대로 미디어(Media)와 리터러시(Literacy)가 조합된 용어이다. 문자 문화 시대에 읽고 쓰고 맥락을 읽는 포괄적 능력을 가리키는 ‘리터러시’라는 용어를 미디어 시대에 적용한 것이 미디어 리터러시이다. 영화와 TV 등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에 의해 문자 문화의 시대에서 영상 문화의 시대로 진화하면서 뉴 미디어를 중심으로 한 리터러시에 대해 교육적인 논의가 필요해졌기 때문에 등장한 용어이다. 매스 미디어의 전성기였던 1970년대 이후 주류가 된 영화, 광고, 사진, TV 방송 등의 뉴 미디어는 문자 중심의 이전 미디어와 달리 이미지, 음성 등 복합 양식으로 구성되어 진위 여부를 판별하기가 쉽지 않았다. 또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경우 미디어에 내포된 상업적, 정치적 의도 등에 쉽게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시기의 커뮤니케이션, 문화 연구, 영화 연구와 비평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연구와 분석이 진행되어 왔다.
가령,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은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등장인물의 가치관과 행동을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영화에 포함된 주제에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가 영향을 받는 것은 단지 스토리텔링과 주제뿐만은 아니다. 영상을 본다는 것은 우리가 알게 모르게 사회 안에서 습득한 기호를 읽는 과정이며 등장인물의 계급, 성별, 문화, 인종, 가치 등이 묘사되는 시각적 스타일들은 권력 관계, 사회적 의도, 문화적 편견 등 다양한 맥락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고전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들은 그 시대 미국의 보수적 중산층의 가치관을 담고 있었다. 결혼으로 완성되는 여성의 성공적인 삶이나 공주와 왕자 중심의 계급주의적 가치관, 백인 중심의 인물 묘사 등은 자연스럽게 어린이들의 문화와 가치관 속에 자리잡았다. 21세기 초반까지도 신문 기사는 절대적인 신뢰를 받았으며,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언론인이 정계에 진출하는 많은 사례가 생겨났다. 하지만 광고가 신문 기사 형식으로 작성되기도 한다. 광고들은 정교하게 미디어 언어와 문화적 관습, 스타 시스템 등을 활용하여 상품 판매를 촉진시킨다.
즉 미디어는 실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제작자의 의도, 사회·문화적 관습과 편견, 가치관이 반영되어 구성된 결과물이라는 것이 미디어 리터러시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바탕을 둔 비판적 관점의 미디어 연구들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구성하는 핵심 개념의 근간이 되었다.
#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목적
전통적으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서 강조하는 핵심 개념은 다음과 같다. ‘재현(representation)’은 미디어가 제작자나 기관 등에 의해 의도를 가지고 구성된 결과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미디어 언어(media language)’는 미디어 텍스트, 즉 사진, 영상, 뉴스 등이 여러 가지 기호 및 관습을 바탕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뜻한다. ‘수용자(audience)’는 매스미디어 환경에서의 미디어 이용자를 뜻한다. 미디어 제작자가 고려하는 수용자, 또는 미디어 텍스트의 해석과 공유 등에서의 수용자의 역할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SNS 환경에서 이 개념은 점차 적극적인 사용자로 확대되고 있기도 하다. ‘미디어 기관(Institutuion)’은 미디어 제작자와 관련된 사회·경제적인 관점을 의미한다. 즉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미디어의 제작과 유통을 둘러싼 경제, 이데올로기, 산업 등에 대해 이해함으로써 미디어에 대한 맥락을 읽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핵심 개념들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근간을 이루어 왔으나, 디지털미디어, 스마트 기기, SNS 등 미디어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더 이상 절대적인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매스미디어 시대의 핵심 개념과 이와 관련된 사회적 변화 등을 살펴보며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궁극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영화들이 비판 속에서 꾸준히 시민 사회의 가치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변화해 온 과정들이나, 상업 광고 혹은 TV 프로그램의 차별적 표현을 지적하여 이를 정정하는 시민참여의 움직임, 뉴스 기사의 출처와 작성자를 확인하고 댓글의 성별과 연령을 확인하는 적극적인 뉴스 읽기 방식 등은 미디어 리터러시 연구 및 교육적 성과와 관련이 깊다고 볼 수 있다.
리터러시 능력, 즉 문해력이 단순히 글을 읽고 쓰는 능력만을 의미하지 않듯, 미디어 리터러시 또한 미디어 기기를 활용하여 제작을 하거나 영상물을 보고 단순히 내용을 파악하는 개인적인 능력이 아니다. 미디어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 가치, 문화, 권력 관계, 경제, 윤리 등의 다양한 사회적 맥락에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능동적이고 비판적인 관점을 가지고 참여하며 문화를 창조하는 포괄적 역량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궁극적으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세계 시민성의 가치를 지향하는 민주 시민을 양성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 21세기 핵심역량으로서의 미디어 리터러시
2021년 현재 교육 담론과 정책에서 강조되는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 즉 지식, 기능, 태도를 확인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미디어는 꾸준히 변화하고 있으며, 시민 사회가 맞닥뜨리고 있는 미디어 리터러시의 과제의 내용과 강조점 또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기구와 교육 단체 등에서는 미디어 리터러시와 관련된 의사소통, 비판적 사고, 지식 정보 처리, 테크놀로지 활용 등을 핵심 역량의 주요한 범주로 설정하고 있다.
OECD가 제시한 21세기 핵심 역량인 DeSeCo(Definition and Selection of Competencies)는 자율적 행동 역량, 상호 작용을 위한 도구 활용 역량, 이질적인 집단과의 사회적 상호 작용 역량 범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은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과 포괄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특히 의사소통 및 정보-기술의 상호 작용 등은 미디어 리터러시와 밀접하다고 볼 수 있다.
유네스코의 경우 21세기 교육의 목표로 미디어와 정보 리터러시를 갖춘 시민을 지향하며 ‘MIL(Media and Information Literacy)’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미디어와 정보 리터러시는 오늘날의 삶과 일에 필요한 중요한 역량으로서 모든 시민은 공평하게 정보와 지식에 접근하고, 미디어와 정보 제공자의 기능을 이해하며, 미디어 콘텐츠를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미디어 콘텐츠의 사용자이자 제작자로서 정보에 입각한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한다. MIL의 개념은 전통적인 미디어 리터러시뿐 아니라 정보 리터러시, 뉴스 리터러시, 도서관, 디지털, 컴퓨터, 인터넷, 게임, 영화, TV, 뉴스, 광고 등 미디어와 디지털 기술, 정보와 관련된 전 분야를 포괄한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유네스코의 MIL이 미디어 리터러시를 중요한 삶의 역량으로 설정하고, 이것이 보편적 인간의 권리 및 세계 시민적 가치와 긴밀히 연결되며, 교사와 공교육의 역할 및 이에 대한 지원을 강화한다는 점이다. 그 외에도 P21(The Patnership for 21st Century Learning, 21세기 미국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가적 협력 단체)에서는 21세기 핵심 역량의 세 가지 범주 중 하나로 디지털 리터러시 역량을 설정하고 있다든가, 호주, 핀란드, 독일, 싱가포르, 영국, 프랑스 등 교육 선진국이 공교육 차원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다양한 방법으로 강조하는 추세들도 21세기 역량으로서의 미디어 리터러시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 미디어 리터러시와 디지털 리터러시
21세기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서 디지털 리터러시와 정보 리터러시가 새롭게 강조되는 이유는 다름 아닌 현재의 미디어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캐나다의 미디어 교육 단체인 Media Smarts는 디지털 리터러시를 강조하며, 이를 ‘디지털 기술과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적절하게 정보에 접근하고, 관리하고, 통합하고, 분석하고, 평가하며, 새로운 지식을 구성하고, 창조하고,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흥미, 태도, 능력’으로 설명한다. 이는 디지털 리터러시가 미디어 리터러시를 대체할 새로운 개념의 역량이 아니라 미디어 리터러시의 역사적 맥락과 가치 위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미디어 리터러시의 핵심 개념이 매스 미디어를 중심으로 한 것이었다면 디지털 리터러시에서는 테크놀로지에 대한 이해가 강조되고 있으며, 사용자의 역할과 위상이 달라짐에 따라 디지털 시민으로서의 책임과 권리, 즉 디지털 시민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근간이 보편적 인권과 삶의 역량, 그리고 민주적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자 함에 있음은 변함이 없다.
# 우리나라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그렇다면 우리 교육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현재 상황은 어떠할까.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다양한 차원의 교육적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교육 정책과 학술 연구, 교사 차원의 교육적 연구와 실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앞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SNS를 중심으로 점점 영향력이 커지는 어린이-청소년 미디어 문화, 교사 인플루언서의 증가, 코로나19와 더불어 찾아온 전면적인 미디어 기반 교육의 확대, 양성 평등 교육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 어린이와 청소년 관련 디지털 성범죄의 확대 등 다양한 이슈와 현상들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대해 이제까지보다도 훨씬 다양하고 적극적인 논의와 실천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과 관련한 가장 중요한 의제 중 하나는 개정 국가 교육과정에서 미디어 리터러시를 핵심 역량으로서 적극적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는 요청이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시민의 기본적인 핵심 역량이자 권리로서 공교육 차원에서 보장될 필요가 있고, 이는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지금도 이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과 관련된 내용들은 부분적으로 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다. 「미디어 문해력(media literacy) 향상을 위한 교실 수업 개선 방안 연구」(정현선 외, 교육부, 2015)는 미디어 리터러시 연구의 국제적 동향 및 전문가 인터뷰를 바탕으로 2015 개정 교육과정 차원에서 미디어 리터러시의 핵심 내용 및 수행 목표를 설정하여 제시하였다. 이에 따르면 현재 국가 교육과정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은 ‘지식정보처리 역량’과 ‘의사소통 역량’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이를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비판적 분석과 평가’, ‘사회 문화적 이해’, ‘정보 검색과 선택’, ‘책임 있는 미디어 이용’, ‘의미 이해와 전달’, ‘감상과 향유’, ‘미디어 기술 활용’, ‘창작과 제작’ 등의 미디어 리터러시의 주요 수행 목표들을 학교 교육에서 실천할 수 있다. 이 목표들은 교육과정 안에서 상호간에 영향을 주며 교육과정 재구성을 통해 복합적으로 성취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핵심 역량 및 기초 학습 요소 및 수행 목표의 관계도(정현선·박유신· 전경란·박한철·이지선·노자연·이현석. 「미디어 문해력(media literacy) 향상을 위한 교실 수업 개선 방안 연구」, 2015)
예를 들어 국어과의 ‘[6국01-05] 매체 자료를 활용하여 내용을 효과적으로 발표한다.’, ‘[6국02-05] 매체에 따른 다양한 읽기 방법을 이해하고 적절하게 적용하여 읽는다.’와 같은 성취기준들은 의미 이해와 전달, 미디어 기술활용, 창작과 제작 등의 요소들과 연결되고, 미술과의 ‘[6미01-02] 이미지가 나타내는 의미를 알 수 있다.’는 시각 문화, 즉 미디어 이미지를 사회·문화적으로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과 연결된다. 도덕과에는 책임 있는 미디어 이용, 사회과에는 사회·문화적 이해와 관련된 내용요소 및 성취기준 등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각 교과에 포함된 내용을 교사가 적극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현재에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가능하지만, 미디어 리터러시의 핵심 개념과 기본적인 수행 목표들이 각 학년군 및 교과별로 체계적으로 도입되기 위해서는 핵심 역량으로서의 미디어 리터러시의 강조와 이와 관련된 교사의 역량을 기르는 과정이 중요한 교육적 과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미디어 리터러시와 우리의 삶
현재 현장에서의 미디어 리터러시 실천은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양성 평등 교육과 관련된 사례들은 이러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바람직한 모델 중 하나이다. 학생들은 자신이 평소에 보는 미디어 속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정보 검색을 통해 발견한 미디어에 재현된 젠더 이미지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여, 학생들 중심으로 다양한 미디어 캠페인을 벌이거나 청원을 하는 등 사회적 참여로 연결시켰다. 그 외에도 학생들의 미디어 생활과 관련하여 다양한 교육적 실천 사례들이 공유되고 있다. 최근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특정 교과 안에 하나의 단원으로 머무르지 않으며, 학생들의 미디어 생활과 관심사를 중심으로 그들의 학습과 삶의 역량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우리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통해 디지털 세계의 일원으로서의 나, 그리고 나를 둘러싼 삶의 기반, 소통, 경제, 학습, 놀이 등 많은 부분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 개선 방향을 찾아갈 수 있다. 따라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서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미디어 활용을 제한하고 금지하는 것을 넘어 그들의 경험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 그들이 원하지 않는 것, 그들의 디지털 삶을 위해 필요한 역량을 지원해 주어야 한다. 교육, 그리고 시민 사회는 바람직한 미디어 생태계를 조성하고 교육적 지원을 통해 어린이가 시민의 일원으로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현재의 미디어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삶과 밀접하며 유해한 미디어 환경은 우리 사회의 유해성을 반영할 뿐이라는 투명한 원리 원칙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지난 2020년 상반기, 팬데믹 초기의 상황을 기억해 보자.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공포보다 더 무섭게 시민 사회를 위협한 것은 미디어를 중심으로 한 허위 정보의 범람과 혐오 문화였다. 허위 정보와 혐오는 SNS뿐 아니라 주류 미디어를 통해서도 전파되었고, 소위 ‘선진국’ 마저도 이러한 미디어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이 시기에 KATOM(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의 교사들은 ‘코로나19 시기를 이겨 내는 미디어 리터러시 백신 10가지’를 선정하여 SNS를 통해 배포하였는데 이는 각 기관과 언론, 유네스코와 해외 교육자 등을 통해 공유되면서 시민 사회의 공감을 얻었다. 이는 코로나19의 공포와 함께 다가온 미디어 세계의 불안정함 속에서 미디어 리터러시가 실제로 우리 사회와 시민의 건강을 지킨 사례 중의 하나일 것이다. 정보의 출처를 확인하고, 혐오 표현을 거부하고, 거짓 정보를 공유하지 않으며, 의학 정보의 공신력을 확인하는 등의 기본적인 미디어 리터러시의 원칙들을 기억하고 실천하는 것은 추상적인 도움이 아닌, 실제로 21세기 시민들이 좋은 사회를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삶의 역량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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