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 “나 선생님. 외견상 해커처럼 보일 준비가 되셨습니까?”
나 : “안 선생. 내가 이 나이에 정말 뭐라도 배우는 게 가능해?”
안 : “그러니까 지금 배우자는 거잖아요. 노트북 여시고, 아래아 한글 프로그램 실행시키세요. 자, 구호를 외쳐보겠습니다. 구호 준비.”
나혁신 교사는 안 선생의 느닷없는 구호 선창에 반사적으로 주먹을 쥐고 팔을 접었다.
안 : “해커는 마우스를 만지지 않는다! 시작.”
나 : “해…. 해커는? 뭐라고? 아. 마우스를 만지지 않는다. 근데 뭐?”
얼떨결에 구호를 외친 나혁신 교사는 피식 헛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도대체 지금 뭘 배우자는 것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안 : “집에 빨리 가려면 말입니다, 손이 빨라야 해요. 우리가 컴퓨터를 못하는 것이지 일을 못 하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우리가 덜 스마트한 것일 뿐이지 교과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잖아요. 즉, 우리는
내용물은 고품질인데 포장 기술만 살짝 미비했던 거라 이거죠.”
나 : “듣고 보니 그렇네. 그러니까 해커처럼 뭔가를 타타타탁 빠른 속도로 치는 걸 배우는 거야? 한메 타자 연습 같은 건가?”
안 : “아뇨. 단축키를 외워볼 거예요. 해커는 마우스에 손을 대지 않잖아요.”
나혁신 교사는 잠시 진이 빠졌다. 단축키는 도무지 외우려고 해도 외워지지 않아 차라리 마우스 우클릭을 연타하는 것이 편하지 않았던가. 나혁신 교사의 푸념 섞인 눈빛을 읽은 안 선생은 연습장과 볼펜을 가방에서 꺼내 건넸다.
안 : “자. 이제부터 제가 정말 과학적인 암기법을 알려드릴 거에요. 룰 하나만 지키시면 됩니다. 구호를 따라해 보세요. 저항하지 말자.”
나 : “저항하지 말자!”
안 : “잘 따라하셨어요. 약간 무리수 아재 개그가 따르더라도 이게 오히려 암기에 큰 도움이 되니까요. 자, 우선 연습장에 적어 보세요. 컨트롤 키.”
나혁신 교사는 속는 셈 치고 안 선생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연습장에 ‘컨트롤 키’라고 적었다.
안 : “오케이. 그럼 뒤에 이렇게 적으세요. 땡땡(:) 한 다음에.
안 : “컨트롤 키는, ‘모든 프로그램을 컨트롤하는 키’라고 외우세요. 컨트롤 키로 시작하는 단축 키는 엑셀, 파워포인트, 프레지, 아래아 한글, 인터넷 등 윈도우에서 돌아가는 거의 모든 프로그램에 쓰여요. 자,
어떻게 외운다고 했죠?”
나 : “어어. 모든 프로그램을 컨트롤한다. 그래서 컨트롤 키. 맞지?”
안 : “좋아요. 그 다음에는 우리의 짧은 영어 실력을 총동원해서 키 조합을 만들어 볼 거예요. 수업 시간에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을 아래아 한글에 쳐 보세요.”
나혁신 교사는 ‘얘들아, 제발 자리에 앉자’ 라고 타이핑했다.
안 : “문장을 전체 선택하고 싶을 때가 있죠? 그러면 시작 키는 뭘까요?”
나 : “알지. 모든 프로그램을 컨트롤하는 키니까……. 컨트롤 키로 시작하겠네.”
안 : “좋아요. 아주 훌륭하십니다. ‘전체’를 뜻하는 영어는? 그렇죠. All이죠. 그러면 이 두 키를 조합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나 : “아하! 컨트롤 + All이니까, 컨트롤 + A가 되겠구나.”
안 : “복사가 영어로 카피죠? 그러면 컨트롤 Copy니까 Ctrl + C가 되는 거예요. 붙여넣기는 이렇게 외우시면 돼요. 자, 제 입술을 보세요.”
안 선생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술을 가리키며 V발음을 지었다.
안 : “VOOTIGI(붙이기) 그러니까 붙여넣기는 Ctrl + V예요.”
나혁신 교사는 안 선생의 주체 못 할 아재 개그 암기법에 당황했지만, 그 황당함이 되려 기억에 강하게 남아 단축키를 외우기 쉬웠다. 나혁신 교사는 연습장에 암기법을 열심히 메모했다.
나 : “약간 무리수 개그이긴 하지만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긴 해.”
안 :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저항하지 말자고요.”
안 선생과 나혁신 교사는 함께 크게 웃었다. 나혁신 교사는 이 정도면 얼마든지 진도를 따라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자신감을 얻었다.
안 : “자, 이제부터는 속도를 올려서 윈도우 키 설명을 죽 드릴게요. 윈도우 키는 사실 우리가 잘 쓰지 않는 키인데요. ‘윈도우 자체를 제어하는 키’, 이렇게 외우시면 됩니다. 메모 준비되셨죠?”
나 : “설마 ‘내’ 컴퓨터가 아니라 ‘이’ 컴퓨터라서 윈도우 + E인 거야?”
메모하던 손을 멈추고 나혁신 교사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묻자 안 선생은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안 : “저항하지 말라고 했잖습니까. 우린 그저 단축키를 내 것으로 만들면 그만입니다. 자 이제 알트 키를 외워볼게요. ‘알’트 키는 ‘알’애아(아래아) 한글에서 쓰인다, 이렇게 외우시면 돼요. 그러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조합을 짤 수 있어요.”
나혁신 교사는 손가락에 익을 때까지 단축키를 반복해 짚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나 : “그러니까, 어떻게든 원리를 만들어 보면 되는 거구나.”
안 선생은 두 손을 손뼉 치듯 포개며 파이팅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안 : “아주 훌륭합니다. 일단 이것만 알아도 업무 속도가 무척 빨라지실 거예요.”
나혁신 교사는 ‘스마트’ 첫 걸음을 내디뎠다는 생각에 자신감이 스멀스멀 솟았다.
나 : “안 선생, 쓰앵님! 이제 다음 코스를 달려볼까?”